妙行도보길

추억의 지리산 종주

행운57 2009. 11. 17.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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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06.9.16.  01:30 ~9.17. 12:20

 

(산행일정)

 

화엄사시설지구 1:30분 출발

노고단대피소 04:50분 도착  (아침식사) 06:50분 출발

임걸령 08:10분 도착

삼도봉 09:10분 도착

토끼봉 10:10분 도착

연하천 11:40분 도착 (점심식사) 12:40분 출발

벽소령대피소 14:10분 도착 14:30분 출발

세석대피소 17:20분 도착 (대피소 일박) 03:20분 출발

장터목대피소 05:10분 도착 (아침식사) 05:40분 출발

천왕봉 06:40분 도착

치밭목대피소 08:50분 도착(간식) 09:10분 출발

대원사매표소 12:20분 도착

 

(산행거리)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46.2km

 

(산행후기)

 

01:30분 물소리님과 함께 화엄사시설지구에서 노고단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다다시님은 성삼재가는 첫차를 타고 노고단대피소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가랑비가 내리는 어둠속을 헤드랜턴의 불빛에 의지하여 쉬엄 쉬엄 걸었다.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하여 다다시님을 기다리는 동안 비가 그치고 날이 밝아 왔다. 노고단의 아침은 상쾌했다. 멀리 서쪽 방향으로 낮은 산들이 중첩하여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산과 산사이에는 운해가 깔렸다. 가슴이 마구 뛰었다. 행복한 감정들이 운해처럼 피어 올랐다. 

(노고단대피소에서...서쪽 산그리메)



(노고단대피소에서...운해가 피어 오르는 종석대)

 

기온이 뚝 떨어져 추웠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소주를 마셨다. 노고단대피소에는 종주를 하려는 산객들로 붐볐다. 좀 어수선하다 싶을 정도로...

 

06:50분 노고단고개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오래 쉬어서인지 고개를 오르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노고단고개를 올라선 순간 기운이 수직상승을 했다.

 

반야봉을 바라보았다. 심원골에서 운해가 피어 올랐다. 그것은 산의 환상이었다. 잠시 그 모습을 보여주고는 안개속으로 모두가 사라졌다. 

 

보이는 세계는 짙은 안개뿐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철저하게 無의 세계였다. 그리고는 다시 잠시 운해속에 떠있는 반야봉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다시 안개속으로 사라졌다.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는 지리산의 아침풍경을 가슴에 담는 일은 철저하게 내마음을 비우는 일과도 같았다.

(노고단고개에서...반야봉과 심원골 운해)

 

 날씨는 잔뜩 흐렸지만 걱정했던 비는 오지 않았다. 산행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일차 목적지를 연하천으로 잡고 시간조절을 하면서 천천히 길을 걸었다.

 

등산로 주변에는 투구꽃이 많이 피었다. 산행내내 그 아름다운 모양에 끌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투구꽃은 이번 산행에서 구절초와 함께 가장 많이 눈에 뛴 꽃이었다.


(투구꽃)

 

가야할 길은 멀었으나 돼지령에서 그만 발걸음이 멎었다. 구름이 신묘한 조화를 부려 산을 희롱하는데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속에 갇히고 말았다.

 

왕시루봉을 넘어서 광양 백운산이 구름에 희롱당하고 토끼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주능이 구름에 희롱을 당하고 멀리 남부능선이 구름에 희롱을 당하는데  나라고 별 수 있겠는가? 

 

그저~~~구름이 장난을 치면 치는대로 눈을 동서남북으로 바쁘게 돌리면서 황홀경에 빠져들 수 밖에 도리가 없지 않은가?

(돼지령에서...)

(돼지령에서...)

(돼지령에서...)


(돼지령에서...)

 

임걸령에서 수통에 물을 보충하고 노루목 바위전망대에 오르니 또 다시 구름이 조화를 부렸다. 정말 복터진 날이었다. 비오는 날에는 지리로 오라. 비개인 하늘에는 구름의 신묘한 조화가 있다.



도무지 구름은 장난을 멈출 줄 몰랐다. 삼도봉에서도 구름의 향연은 계속되었다. 오가는 산객들마다 탄성을 질렀다. 이렇게 행복한 지리주능을 그동안 쓸데없는 분별심으로 멀리한 나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너무 황홀한 것들을 보아서인지 토끼봉에서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총각샘을 거쳐 연하천에 도착하니 많은 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햇반과 라면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다음 벽소령으로 향했다. 날씨는 잔뜩 흐렸고 빗방울도 간간히 들었다.

 

형제봉 바위는 언제봐도 멋있다. 웅장한 남성미를 맘껏 뽐내고 있어도 거만스럽다거나 밉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벽소령에 도착하니 날씨가 변덕을 부렸다. 빗방울이 굵어지면서 바람이 차다. 걷는게 힘이 들어 동벽소령에서 잠시 간식을 먹고서 기운을 회복하여 선비샘으로 향했다.

 

선비샘에서는 산안개가 자욱하여 신비한 모습을 연출했다. 물소리님이 미수가루를 태워 주었다. 몇모금 들이키니 속이 든든해졌다.

선비샘에서 세석가는 길이 힘들다고들 하지만 요즈음은 계단을 설치해서 옛날에 비해서는 훨씬 수월하다. 칠선봉으로 가던중 전망이 좋은 지점에서 또 구름감상에 발길을 멈췄다. 

 

칠선봉에서 지나온 봉우리들을 뒤돌아보았다. 구름이 엮어내는 저 아름다움을 어떻게 인간의 언어로 전달할 수 있으랴. 그저 가슴으로 느낄 뿐...



영신봉에서 세석으로 내려가는 길에  용담이 꽃을 피웠다.  무릎관절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지만 세석대피소가 지척이라 걱정은 되지 않았다.

세석대피소에서 져녁식사를 하고 일정을 논의하는데 물소리님은 야간산행을 계속하자고 했다. 무릎의 통증이 심한데 고민이 되었다. 다행히 빗방울이 굵어지자 그녀는 스스로 야간산행을 포기했다. 다행이었다.

 

잠시후 대피소 예약확인을 하러간 물소리님이 걱정스런 얼굴로 돌아왔다. 분명히 예약을 했는데 예약자명단에 없다는 것이었다. 미안해 할까봐 기다리면 자리가 남아돌테니 걱정말라며 술 한잔을 권했다.

 

다행히 태풍소식으로 대피소에 여유좌석이 많이 있어 잠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초져녁에 피곤하여 잠시 깊은 잠에 빠져 들었으나 보일러를 얼마나 틀어대는지 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밤새 내린 비는 새벽에도 계속하여 내렸다. 새벽3시20분에 세석을 출발하여 칠흙같은 어둠을 헤드랜턴 하나에 의지하여 촛대봉을 넘어 장터목으로 향했다. 안개가 짙게 깔린 빗속길을 걷는 다는 것은 얼마간의 위험이 따랐다.

 

그래도 연하봉주변에서는 어둠속에서 렌턴 불빛에 빛나는 구절초의 청초함을 감상하는 청복을 누렸다. 아~~~맑고 밝은 날이었다면 야생화들이 천국을 이루는 이 길에서 무한한 행복을 누릴 수 있었을텐데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장터목에서 누룽지를 끓여 아침식사를 하고 제석봉을 오르는데 날이 밝았다. 고사목 초원지대를 가득메운 구절초의 아름다움에 망연자실할 따름이었다. 뒤돌아 보니 일출봉을 넘나드는 산안개의 움직임이 환상의 세계를 연출했다.

 

통천문을 지나 천왕봉에 올랐으나 비바람으로 오래 머물 수 없었다. 보이는 것 또한 천왕봉 표지석 뿐 온통 세상은 안개속이었다.

 

천왕봉에서 다다시님은 중산리로 내려가고 나는 물소리님과 함께 치밭목으로 향했다. 비는 점점 거세지고 바람도 차니 쉴 여유조차 없이 중봉을 지나고 써레봉능선을 오르락 내리락 발걸음을 재촉했다.

 

무릎의 통증은 점점 더 심해져 가는데 길은 아득했다. 고통을 즐겨라. 이 고통은 어디서 오는지 깊이 생각해 보자. 이 고통을 행복으로 승화시킬 수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나는 완전한 행복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자꾸만 깊은 상념속으로 빠져 들었다.

 

치밭목대피소에서 간식을 하고 유평리까지 내려 오는 동안에도 비는 계속되었고 무릎의 통증은 점점 더 심해져 갔지만 이상하게도 고통은 줄어들었다. 유평리에서 대원사매표소까지 걷는 동안에는 평지길이어서 무릎의 통증이 멎었다.

 

진주에 도착하여 다다시님과 합류하여 뒷풀이를 마치고 나는 다시 차량을 회수하러 화엄사로 향했다. 뒤돌아 보면 지나온 시간들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강물처럼 흘러만 간다.

 

2001년 여름 아내와의 지리산 무박종주이후 5년만에 물소리님의 지리산 종주를 도우러  떠났던 이 길은 이제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의 추억으로 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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