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순례

서울 북한산(삼각산) 도선사

행운57 2009. 10. 8.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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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8.3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 산264번지 북한산 중턱에 위치한 삼각산 도선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862년(경문왕 2) 도선(道詵)이 창건했으며 1863년(철종 14) 김좌근(金佐根)의 시주로 중수하고 칠성각을 신축했다. 1887년(고종 24) 임준(任準)이 5층석탑을 세우고 그 안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1903년 혜명(慧明)이 고종의 명을 받아 대웅전을 중건했으며, 1904년 국가기원도량으로 지정받았다.(절까지 차량통행가능/삼각산은 북한산의 옛이름)

 도봉사 일주문

 

대웅전

 

 

대웅전내 삼존불

 

 

 

도선사 석불(관세음보살상/마애불/서울시유형문화재 제34호)

법당에서보다 마애불에서 기도정진하는 신도들이 더 많았다.

 

 

 

 

호국참회원

 

 

 

 

 

도선사가람배치

 

 

 
 

 

 

西曆

1年齡

行  狀  記  錄

1902

 

음 10. 20. 경상남도 진주시 수정동 540번지에서 출생
본관 성산(星山), 부친 이화식(李化植)과 모친 고부용(高芙容)의 1남3녀 중 장남.
본명 이찬호(李讚浩) 법명 순호(淳浩) 법호 청담(靑潭)

1910
9
봉부차재에서 한학을 수학
1918
17
진주 제일보통학교 입학
1919
18
진주지역의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름.
1921
20
차점이(車点伊)와 결혼.
진주농림학교 입학
진주 호국사 박포명 스님의 법문을 듣고 출가의 뜻을 갖게 됨.
1922
21
해인사, 백양사 등을 찾아가 출가를 수차 시도하였으나 결혼한 까닭으로 출가가 여의치 않음.
1923
22
부친 사망.
농업학교 교장 소개로 일본으로 건너가 승려교육을 받기로 하고 도일.
일본에서 화가 수업중이던 동기 박생광을 만나 그의 소개로 효고현 송운사(松雲寺)로 출가하여 아끼모도 준가(秋元淳稚)스님으로부터 행자수업을 받았으나 일본의 승려 본분 교육이 여의치 않아 귀국함.
1926
25
경남 고성 옥천사(玉泉寺)로 출가하여 승려의 신분증인 도첩을 받음.
동년 10월 개운사(開雲寺) 대원불교전문강원에 입학하여 박한영 대강백으로부터 경·율·론 삼장을 사사받음.
1927
26
조선불교학인대회 발기를 위해 전국의 강원을 순방
1928
27
학인대회를 개최하고 「조선불교학인연맹」을 결성함.
1929
28
제2차 학인대회를 개최후 양주 봉선사(奉先寺)에서 박영호 율사를 계사로 구족계 수지.
국경 근처 나제거오라는 지역에 수월(水月)대선사를 친견하고 1년간 정진함.
1930
29
설악산 봉정암에서 용맹정진 중 많은 눈이 내렸는데도 피골이 상접하도록 정진함.
1931
30
금강산 마하연에서 묵언과 장좌불와의 용맹정진.
선학원에서 열린 조선불교 선종 제1회 수좌대회에 참석.
1932
31
묘향산 보현사 설령대에서 목숨을 건 용맹정진.
1933
32
덕숭산 수덕사 정혜선원 만공(滿空)회상에서 용맹정진.
1935
34
3년간의 용맹정진 끝에 견성대오하시고
上來佛祖鈍痴漢 安得了知玆邊事 若人問我向所能 路傍古塔傾西方이란 오도송을 지음.
만공스님으로부터 견성인가 받고 올연(兀然)이란 법호를 얻음.
선학원(禪學院)에서 선부흥대회를 조직하고, 종단기구를 구성하는데 주도적 역할.
이사로 선임되며, 요시찰 인물로 일본경찰의 감시를 받게 됨.
1937
36
운허스님의 부탁으로 춘원 이광수와 소림사(少林寺)에서 일주일간 불교사상에 대해 격론을 폄. 그 결과 춘원 이광수가 불교에 귀의하는 계기가 됨.
1938
37
덕숭산 수덕사 정혜선원에서 안거
1939
38
금강산 마하연에서 안거
1941
40
조선총독부의 편향적 불교정책에 대응하여 선학원에서 유교법회(遺敎法會)를 개최.
운허스님, 적음스님과 함께 준비위원으로서 행사를 주관함.
1942
41
속리산 복천암에서 생식을 하며 동안거하시고, 동관음 토굴에 피신하기도 함.
1943
42
독립운동 혐의(금강회 사건)로 복천암에서 체포, 상주경찰서로 연행, 심한 고문 끝에 투옥 중에 이질에 걸려 피병사에 감금된 후 상주포교당으로 주거 제한 규제가 되어 풀려났음.
1944
43
문경 사불산 대승사 쌍련선원에서 성철스님, 우봉스님 등과 안거
1946
45
봉암사 주지의 요청으로 쌍련선원에서 봉암사로 옮김.
해인사에 조선불교 가야총림(伽倻叢林)이 개설되어 봉암사 도반들과 함께 동참.
1947
46
가야총림 교수와 화주 소임을 맡아 총림 운영에 진력하였으나, 빈약한 재정 탓에 여의치 못하여 다시 봉암사로 돌아감.
1948
47
진주배영초등학교 강당에서 7일간 "우주와 인생"이라는 주제로 시민대법회 실시.
가야총림 무산으로 '봉암사 결사'가 본격화.
당시 홍가사 목발우 등이 폐쇄되고 백장청규를 본받아 공주규약(共住規約)을 제정하여 용맹정진.
이 결사는 교단정화와 조계종의 성립에 이르는 현대 한국불교의 정신적 토대가 됨.
1950
49
봉암사에서도 빨치산 등으로 정진에 장애가 되어, 고성 문수암(文殊庵)으로 옮겨 금선대 토굴에서 4년간 용맹정진.
1954
53
불교교단 정화추진위원회가 선학원에서 구성되는데 효봉스님의 요청과 대월스님의 문수암 방문 권유로 함께 합류.
8. 25 선학원에서 제1차 전국비구승대표자대회 개최에 따른 정화추진위원으로 선출되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됨.
9. 28-29 선학원에 제2차 전국비구승대회 개최, 종회의원 선출.
9. 30 임시중앙종회를 개최, 집행부의 도총섭에 임명됨.
당시 처음으로 청담(靑潭)이라는 법호를 사용함.
10. 11 금오, 적음, 월하, 원호스님 등과 경무대 방문, 대통령을 면담하여 정화의 원리를 전함.
11. 5 태고사(현 조계사)에 진입함.
11. 10 태고사 현판을 조계사로 변경, 「불교조계종 중앙종무원」 현판 부착.
12. 12 조계사에서 제3차 전국비구비구니대회 개최. 교단정화의 역사적 당위성에 대해 열변으로 대회를 주도함.
1955
54
사부대중 347명과 정화불사 성취를 위한 단식 묵언 기도.
「제4차 전국비구승니대회」를 통해 조계종 교단 정화운동의 합법적인 정통성을 대내외에 천명,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에 취임.
「대각회」총재 취임.
1956
55
조계종 종회의장에 선출됨.
정화 1주년 기념행사로 보살계 대법회에서 350여 명의 수계와 법문을 행함.
네팔 주최 제4차 세계불교도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석.
1957
56
해인사 주지 취임. (1960. 5 까지 재임)
1958
57
제5차 태국 방콕에서 세계불교도대회에 대표로 참석
1959
58
「불교사상강좌」「나와 우주와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조계사 신도와 육사생도들에게 강연
1960
59
종단기관지인 「대한불교(불교신문)」를 창간하고 편집 겸 발행인으로 초대사장 취임.
범어사에 금강계단을 설치, 동산스님과 더불어 제1기 비구 수계식 거행.
이승만 대통령 하야후 대처승 반격에 대응해 「한국불교정법수호순교단」조직.
「불교정화대책위원회」위원장으로 활동.
조계사에 중앙 금강계단 제4회 보살계 대법회를 실시함.
1961
60
도선사(道詵寺) 주지 취임.
재건국민운동본부 중앙위원 취임.
캄보디아에서 개최된 제6차 세계불교도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석.
전국신도회 부총재 취임.
1962
61
룸비니 한국협회 총재 취임.
불교재건비상중앙종회 의장 취임.
대한불교조계종 대종사 법계 품수.
1963
62
전국승려대표자대회 의장
불교정화에 관하여 조지훈 시인과 「동아일보」지상 논쟁.
1964
63
도제양성과 승려 자질 향상을 위해 오대산 월정사에서 제1회 승려특별강습회 개최.
제2회는 동국대학교에서 개최.
재단법인 동국학원 이사장 취임.
부처님 탄신일 공휴일 제정을 추진.
선학원 제7대 이사장 취임(1964∼1967)
1966
65
중앙종회의장 재취임.
11.22 - 12. 5 일본정부 초청으로 방일. 사또 수상 및 전 수상들과 면담.
이마 이즈미(今泉) 천태종 관장 등 일본 불교계 인사들과 접견.
동경대학에서 「불교사상으로 본 인류의 구제방안」이라는 주제로 강연.
통합종단 제2대 종정에 취임.
군승단 창단을 주도하시었음.
전국신도회 총재 취임.
1967
66
명동성당에서 노기남 대주교 집전으로 거행된 부활절 미사에 참례(參禮).
서울 시민회관에서 전국불교도대표자대회를 개최(약 3000명 참석).
9개 항에 달하는 사안을 의결 처리함.
9개 항은
1. 역경, 2. 도제육성의식의 현대화, 3. 포교, 4. 군승제 촉구, 5. 신도조직화, 6. 석탄일 공휴일 제정, 7. 불교회관 건립, 8. 승가대학 설림, 9. 불교방송국 설립 등이다.
7. 26 종정 자진 사퇴, 장로원장으로 추대.
「대한민국 종교협의회」를 설립, 초대의장에 피선.
1968
67
도선사 호국참회원 건립 기공.
「국민교육헌장」제정심의위원으로 추대.
1969
68
한국불교총연합회 이사장 취임.
조계사에서 금강경 대법회를 열어 매주 1회씩 50회를 실시.
8. 12 종단의 정화이념이 여의치 않자 탈퇴선언의 위엄을 보이시기도 하였음.
1970
69
동국불교방송 설립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
7. 15 - 17 종회에서 총무원장으로 선출됨.
8. 15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상.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불교지도자대회 의장으로 활동.
대회에서 장로원장으로 추대됨.
1971
70
한국종교협의회 회장에 피선되어 종교간의 유대와 화해를 도모함.
5. 28 일본 총지사에서 개최된 제3차 세계평화촉진 종교인 대회에 참석.
「삼일(3.1) 국민회의」 의장에 피선.
11. 15 열반.
11. 19 종단장 거행.
세수 70세, 법랍 45세.
사리 8과를 남기어 도선사, 옥천사, 문수암, 고창 선운사 등에 사리탑 부도를 조성하여 봉안함.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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