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축사는 서울시 도봉구 도봉동 549번지 도봉산 만장봉 동쪽 기슭에 자리한 사찰로, 이 절을 천축사(天竺寺)라고 이름한 것은 고려 때 인도승려 지공(指空)이 나옹화상(懶翁和尙)에게 이곳의 경관이 천축국의 영축산과 비슷하다고 한데서 유래되었다.
천축사의 연혁은 신라 673년(문무왕 13)에 의상대사가 의상대에서 수도할 때, 제자를 시켜 암자를 짓게 하고, 옥천암(玉泉庵)이라 한 것에서 출발하였으며, 그 뒤 고려 명종 때에 근처 영국사(寧國寺)의 부속암자로 맥을 이었다. 이후 조선시대인 1398년(태조 7)에 함흥에서 돌아오던 태조가 옛날 이곳에서 백일기도하던 것을 상기하여 절을 중창하고 천축사라는 사액을 내렸다고 한다.
또 1474년(성종 5)에 성종의 왕명으로 천축사가 중창되었고, 명종 때에는 문정왕후(文定王后)가 화류용상을 하사하여 불좌를 만들었다고 한다. 1812년(순조 12)에는 경학(敬學)스님이 절을 중창하였으며, 1816년(순조 16)에는 신도 김연화(金蓮花)가 불량답(佛糧沓) 15두락을 절에 희사하여 절의 사세가 넓어졌다.
이후 1862년에는 상공(相公) 김흥근(金興根), 판서(判書) 김보근, 참판(參判) 이장오 등이 불량을 희사하여, 19세기 말 천축사는 수많은 신도들에 의해 중수ㆍ중창되었다. 1863년에 주지 긍순(肯順)이 칠성탱, 독성탱, 산신탱을 조성하고, 1895년에 화주 성암응부(星巖應夫)가 민왕후 및 상궁 박씨등의 시주를 얻어 후불탱, 신중탱, 지장탱을 조성하였다. 하지만 현재는 모든 불화들이 도난당해 민왕후가 시주한 삼신불탱과 신중탱만이 전해진다.
근대에는 1911년에 화주 보허축전(寶虛竺典)이 관음ㆍ신중탱을 봉안하고, 1931년에 주지 김용태(金瑢泰)가 천축사로 오르는 길을 확장하였으며, 이후 수많은 신도들이 천축사 도량에 불사하여, 1936년에 현재의 모습을 갖춘 가람이 조성되었다.
지금의 가람은 주지 용태스님 이후인 1959년에 중수된 것으로, 현재 주지 현공(玄公)스님이 주석하며, 2003년에부터 2005년까지 대웅전을 비롯하여 독성각ㆍ산신각을 중수하하고, 요사채와 공양간을 신축하여 옛 천축사 가람을 복원한 것이다. 근래 도봉산의 관음기도도량으로 알려지며, 수많은 신도들이 절을 찾고 있는데, 근대 고승들의 참선수행도량이던 무문관이 그 맥을 이어가고 있지 못하고 있어 아쉬울 따름이다.
천축사는 차량으로는 갈 수 없으며, 도봉탐방지원센타에서 약1시간 정도를 등산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야 한다.
천축사를 처음 순례한 느낌은 "좋다! 좋다! 참 좋다!'였다. 마침 점심때가 되어 공양을 한후 108배와 금강경 독송을 하고 신선대를 향하여 길을 떠났다.
(천축사입구)
천축사 법당
원통전
산신각
독성각
독성각내부
천축사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천축사 법당내부 삼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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