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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6.10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214-1번지 함백산 기슭에 자리잡은 태백산 정암사는 신라 선덕여왕 7년(638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절이다. 정암사 적멸보궁 뒷편에는 수마노탑이 있는데 보물 제410호로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정암사 적멸보궁(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2호)
적멸보궁은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모셔놓는 건물을 가리킨다.
정암사 적멸보궁은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영조 47년(1771)에 고쳐 지은 것으로 미루어 18세기 초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이 후에도 여러 차례 보수하였다. 이곳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석가모니불의 사리를 정암사에 수마노탑을 세워 안치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세운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꾸몄다.
안쪽에는 불상이 없고 신중탱화 2점과 동종 1점을 보관하고 있다. 이는 수마노탑에 부처님의 사리가 있기 때문에 불상을 모시지 않는 적멸보궁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통도사, 법흥사, 상원사, 봉정암의 적멸보궁과 더불어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로 불린다.
정암사 수마노탑(국가문화재 지정 - 보물 제410호)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산214번지 소재
정암사 적멸보궁 뒤의 산비탈에 세워진 7층의 모전석탑이다. 모전석탑이란 전탑을 모방한 탑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쌓아올린 탑을 말한다.
화강암으로 6단의 기단(基壇)을 쌓고 탑신부를 받치기 위해 2단의 받침을 두었다. 탑신(塔身)은 회녹색을 띤 석회암으로 쌓았는데, 표면을 정교하게 잘 정돈하여 벽돌을 사용한 것처럼 보인다. 1층 몸돌의 남쪽면에는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마련했으며, 1장의 돌을 세워 문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는 철로 만든 문고리를 달았다. 지붕돌은 추녀 너비가 짧고 추녀끝에서 살짝 들려있으며, 풍경이 달려 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는 1층이 7단이고, 1단씩 줄어들어 7층은 1단이며, 지붕돌 윗면도 1층이 9단, 1단씩 줄어들어 7층은 3단으로 되어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으로는 청동으로 만든 장식을 올렸다.
돌벽돌의 일반적인 크기로 보아 그리 거대한 편은 아니지만 형태가 세련되고 수법 또한 정교한 탑이다. 탑 앞에 돌이 하나 있는데, 여기에 새겨진 연꽃무늬, 안상(眼象) 등은 모두 고려시대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이 석탑은 파손이 심해서 1972년 해체·복원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탑을 세운 이유를 담은 탑지석(塔誌石) 5개와 금·은·동으로 만들어진 사리구가 발견되어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보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모습이 언제부터 전해진 것인지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어서 확실하지 않지만, 정암사에 있는 여러 유물과 비교해 볼 때 고려시대에 처음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화강암으로 6단의 기단(基壇)을 쌓고 탑신부를 받치기 위해 2단의 받침을 두었다. 탑신(塔身)은 회녹색을 띤 석회암으로 쌓았는데, 표면을 정교하게 잘 정돈하여 벽돌을 사용한 것처럼 보인다. 1층 몸돌의 남쪽면에는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마련했으며, 1장의 돌을 세워 문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는 철로 만든 문고리를 달았다. 지붕돌은 추녀 너비가 짧고 추녀끝에서 살짝 들려있으며, 풍경이 달려 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는 1층이 7단이고, 1단씩 줄어들어 7층은 1단이며, 지붕돌 윗면도 1층이 9단, 1단씩 줄어들어 7층은 3단으로 되어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으로는 청동으로 만든 장식을 올렸다.
돌벽돌의 일반적인 크기로 보아 그리 거대한 편은 아니지만 형태가 세련되고 수법 또한 정교한 탑이다. 탑 앞에 돌이 하나 있는데, 여기에 새겨진 연꽃무늬, 안상(眼象) 등은 모두 고려시대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이 석탑은 파손이 심해서 1972년 해체·복원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탑을 세운 이유를 담은 탑지석(塔誌石) 5개와 금·은·동으로 만들어진 사리구가 발견되어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보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모습이 언제부터 전해진 것인지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어서 확실하지 않지만, 정암사에 있는 여러 유물과 비교해 볼 때 고려시대에 처음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정암사수마노탑은 7층의 모전석탑(模塼石塔)이다. 모를 죽인 화강석을 6단으로 쌓아 기단(基壇)을 삼고, 다시 횡전재(橫塼材) 2단을 쌓아 탑신부(塔身部)를 받치고 있다. 탑신부를 구성한 횡전재는 회록색(灰綠色)의 석회암으로 가공이 매우 정교하다.
1층 옥신 남쪽면 중앙에 감형(龕刑)을 설치하였으며 문비(門扉)는 1장의 돌을 세우고 중앙에 세로줄을 음각하여 문이 2개임을 표현했다. 탑신(塔身)은 높이의 체감이 심하지 않아 전체적으로 고준(高峻)해 보인다. 옥개(屋蓋) 부분이 비교적 넓으며 추녀 밑은 약한 반전(反轉)이 있다. 옥개석받침은 첫층 7단에서 1단씩 줄어들어 7층은 1단이 되고, 옥개 상면 낙수면(落水面)의 층단은 첫층 9단에서 역시 1단씩 줄어 7층에서는 3단이된다. 추녀에는 풍령(風鈴)이 남아 있기도 하다. 상륜부(相輪部)에는 화강암제의 노반(露盤) 위에 청동제 상륜이 있다. 청동제 상륜은 화형(花形) 투각(透刻)의 5륜(輪)과 수연(水煙)이 있고, 풍령이 달려 있으며 철쇄(鐵鎖)가 4층 옥개까지 늘어져 있다.
사적기(史蹟記)에 신라 자장율사(慈藏律師)의 창건이라 전하나, 고려시대의 건립으로 추정되며, 조선 영조(英祖) 46년(1770), 정조(正祖) 2년(1778), 고종(高宗) 11년(1874) 등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쳤다.
1층 옥신 남쪽면 중앙에 감형(龕刑)을 설치하였으며 문비(門扉)는 1장의 돌을 세우고 중앙에 세로줄을 음각하여 문이 2개임을 표현했다. 탑신(塔身)은 높이의 체감이 심하지 않아 전체적으로 고준(高峻)해 보인다. 옥개(屋蓋) 부분이 비교적 넓으며 추녀 밑은 약한 반전(反轉)이 있다. 옥개석받침은 첫층 7단에서 1단씩 줄어들어 7층은 1단이 되고, 옥개 상면 낙수면(落水面)의 층단은 첫층 9단에서 역시 1단씩 줄어 7층에서는 3단이된다. 추녀에는 풍령(風鈴)이 남아 있기도 하다. 상륜부(相輪部)에는 화강암제의 노반(露盤) 위에 청동제 상륜이 있다. 청동제 상륜은 화형(花形) 투각(透刻)의 5륜(輪)과 수연(水煙)이 있고, 풍령이 달려 있으며 철쇄(鐵鎖)가 4층 옥개까지 늘어져 있다.
사적기(史蹟記)에 신라 자장율사(慈藏律師)의 창건이라 전하나, 고려시대의 건립으로 추정되며, 조선 영조(英祖) 46년(1770), 정조(正祖) 2년(1778), 고종(高宗) 11년(1874) 등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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